이번 레터는 지난 레터의 후속편이야.

지난 레터에서 내가 최근에 읽은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을 소개했지. 오랜만에 만난 정말 좋은 책이었어.

혹시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 핵심만 간략하게 요약하면:

우리가 사는 사회의 수준은 높아지고 있는데, 이건 곧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게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해. '이건 해도 돼', '이건 하면 안 돼' 하는 것들이 많아지지.
이렇게 수준이 높아지면 그 사회는 더 쾌적해지지만, 동시에 그 높은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은 부적응자로 취급받거나 소외되곤 해.
결국 우리 사회는 점점 천편일률적인 기준만을 갖게 되고, 다양성은 사라져. 구성원들은 자유를 빼앗기고 불행해질 위험이 있어.

책에 나오는 중요한 개념은 '내면화'였어. 어떤 가치를 내면화한다는 건, 그 가치가 우리 일상에 너무 깊이 스며들어와 있어서 그걸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는 뜻이야.

이번 레터에서는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공유해보려고 해. 네 생각도 궁금하다!


통제욕이 아주 강한 대문자 J

사실 나에게 약간의 엘리트주의가 있다는 걸 부정하지는 못하겠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꽤 높은 기준을 갖고 있고 스스로 그 기준에 맞추려고 많은 노력을 하는 편인데, 그 잣대를 다른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갖다대는 실례를 종종 범하곤 했거든.

그 (수많은) 잣대 중에는 질서를 잘 지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어. "벌집에 해로운 것은 벌에게도 해롭다"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사는 나는, 남들을 배려하지 않거나 규칙을 어기는 것과 같이 공동체의 질서를 해치는 사람들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왔어.

 

아, 여기에서 잠깐 부끄러운 고백을 두 개 하자면 일단 첫 번째, 그 질서라는 걸 나도 매번 철저하게 지키지는 못했다는 것이 있고 두 번째, 지금 계속 과거형으로 쓰고 있지만 사실 이런 잣대로 남을 판단하는 습관이 여전히 어느 정도는 남아있다는 것이 있어 ㅎㅎ 민망하네.

어쨌든, 나한테 ‘질서’는 그 자체로 절대선이었어. 아묻따 가능한 한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었지.

하지만 구마시로 도루의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은 나에게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질서가 진짜 절대선이 맞아? 그걸 지키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게 맞아? 오히려 그 사회의 구성원들을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아?”라며 되묻는 책이라 나에겐 꽤 신선하게 다가왔어.


우리가 내면화한 것들

이 책이 우리가 속한 사회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다룬다고 했잖아? 저자는 이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다뤄. 예를 들어 정신건강, 교육, 육아, 인간관계, 건강, 청결, 외모 등이 있어.

마음 같아서는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공유해주고 싶지만, 그럼 레터가 지나치게 길어질 테니 핵심만 다뤄볼게.

이 책이 결국 말하는 건, 우리 사회가 내면화한 것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1) 자유를 뺏기고 (2) 다양성은 표백되며 (3) 결국 소외된다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내면화’한 것은 저자가 책에서 입이(펜이) 닳도록 말하는 자본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사회계약 논리가 있어. 벌써 머리 아프지? 이걸 쉽게 풀어보면 이렇게 이해해볼 수 있을 거야.

자본주의 : 모든 것에 경제적 가치가 매겨져서,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선택만이 '선'이 되었어.
개인주의 : 마을이나 대가족 같은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개개인이 떠밀려 나오게 되었어.
사회계약 : 질서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제도적/암묵적으로 합의한 수많은 규칙들을 말해. '이건 돼', '저건 안 돼'와 같은 것들.

 

이 세 가지로 인해 우리 사회는 소위 ‘수준’이 높아지지만, 이걸 뒤집어 말하면 점점 천편일률적이 되어 간다는 뜻이기도 해.

바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건 해도 돼’, ‘저건 하면 안 돼’라는 규칙들이 점점 많아지고, 그 질서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적응자 취급을 받지.

저자는 이런 사회에서는 개개인의 개성과 자유가 존중받는 다양성은 사라지고(“표백되고”) 모두가 같은 기준만을 바라보며 살게 된다고 경고해.

어때, 맞는 말 같아?


특히 와닿은 두 가지 포인트

이런 맥락에서 나한테 특히 흥미롭게(또는 뼈 아프게) 다가왔던 부분은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부르주아적 상승지향성'. 이것도 말이 어렵지만, 쉽게 말하면 부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따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말해. 누구나 이런 욕구를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잖아?

근데 문제는, 부자가 아닌 사람들이 부자들이 가진 라이프스타일을 따라하려 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생긴다는 거야.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데, 현대인들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부자들의 삶을 엿볼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해. 보통이 아니지?)

대표적으로 육아와 교육이 있지.

그래서 저자는 아이를 낳는 것이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출생률이 낮아지는 것에 대해 젊은이들을 탓하기만 할 수는 없다고 말해. 앞에서 말한 '자본주의'를 우리 사회가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내면화했기 때문에, 육아라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순수한 기쁨이 아니라 투자 대비 이익이 나오기가 어려운 '사업'으로 변질되었다는 거야.

나에게 깊숙이 와닿은 다른 하나는 바로 본인의 세계를 넓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빠지는 악순환이야. 책에 이런 문장이 나와.

“우리의 자유, 나아가서는 의사소통으로 얻은 정보의 폭과 세계관의 너비는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관심사와 매개물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자신이 제시할 수 있는 시장가치가 얼마나 높은지에 따라 좌우된다.”

즉, 이 말은 곧 어떤 사람이 관심사도 별로 없고, 경제 자본도 부족하고, 소셜 스킬마저 부족하다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는 거야.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없기 때문이지(=시장 가치가 낮다).

그럼 그 사람의 세계관, 그러니까 그 사람이 볼 수 있는 세계는 더욱 더 편협해져. 악순환이야.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가 소외되는 걸 견디지 못하는 나는 이 대목에서 한참을 멈춰있었어.


뭘 해볼 수 있을까?

슬슬 마무리해볼게.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건.. 무력함이었어. 사회가 이런 가치들을 이렇게나 깊숙이 내면화했는데, 개인이 변한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을까? 불가능할 것 같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차원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해결책은 있을 거야(제발!). 저자가 말한 해결책이 있고 내가 생각해본 해결책이 있어.

먼저 저자가 말한 해결책은, 이런 문제에 대한 깊은 논의가 가능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이를 잘 기록해두는 거야. 우리의 다양성과 자유, 개성을 지키기 위해 본인의 세계를 넓히고 이것을 기록해야 한다는 거지.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얘기하는데, 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 중 하나라고 생각해:

“진정으로 다양한 존재의 양상과 다양한 사고방식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사소통과 논의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계속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보다 쉬운) 개인 차원의 해결책은 두 가지가 있어.

첫 번째, 남을 바라볼 때는 조금 더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사회가 정해놓은 높은 기준에 맞추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서 혀를 차거나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 그리고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갖고 사는 사람을 보고 ‘그럴 수도 있구나’하며 이해해보려 하는 것. (알았지 영준아?)

두 번째, 나 자신을 바라볼 때는 내가 천편일률적인 관습을 내면화한 것은 아닌지 점검하는 것.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 내 안에 부적절한 ‘초자아’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해.

’이건 해도 돼’, ‘저건 하면 안 돼’라고 나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그게 진짜 맞는 얘기인지 점검해보는 것. 이것들이 오히려 나의 자유를 옥죄고 내 시야를 편협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대안은 없는지.


진짜 마무리

어쨌든 결론은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타인에 대한 관대함을 갖고, 세상을 더 오픈된 마인드로 바라보는 것이 이 책에서 지적하는 문제점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개인 차원의 해결책일 거라고 생각해.

 

마지막으로, 책에서 가장 깊게 공감하면서 읽었던 문장으로 마무리할게.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의 통념과 습관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현대 사회의 양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다양한 공간 설계 속에서 법과 제도의 틀을 준수하며 생활하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이를 맹종하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 나는 우리가 현대 사회의 통념과 습관을 따르되, 마음속으로는 이에 대한 반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넌 어때? 너의 세계를 넓히려고 어떤 노력들을 해보고 있어? 여행, 대화, 취미, 일, 책, 무엇이든 좋아. 편협해지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보고 있는지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