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주 도발적인(?) 주제를 가지고 왔어.
내가 사랑에 대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던 것 하나만 꼽으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선택할 거야.
그 이유는 바로,
연애 이후의 과정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 특히 좋았던 이유는, ‘사랑’을 바라보는 내 시야를 넓혀줬기 때문이야.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와 :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이라고 생각해.

당장 미디어만 봐도 우리 모두의 관심은 어떻게 두 남녀가 만나서 호감을 갖고 점점 깊은 관계를 시작하게 되느냐이지, 그 관계를 어떻게 1년, 10년, 평생 잘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 해보여.
이 책은 특히 낭만적 연애 기간이 끝난 후의 결혼 생활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는 행동, 저지르는 실수 등을 낱낯이 들춰내.
그래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많아.
도발적인 질문
책에는 주인공이 결혼 생활 중 외도를 하는 장면이 나와.
얼마 전에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했는데, 누가 이 외도 장면에 대해 아주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발제를 했어. “정신적 바람과 육체적 바람 중에 더 용납할 수 없는 건 뭔가요?”
도파민 on.
자, 더 이어가기 전에 한 가지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자.
논쟁의 여지 없이 당연히 외도는 나쁜 거지. 다만 건설적인 대화를 위해 ‘외도’라는 민감한 주제에 이렇게 접근해보자:
(결혼 생활을 포함해서,) 그 무엇이든 오랫동안 큰 변화 없이 같은 상태가 지속되어 익숙해지면 인간은 권태를 느껴. 그리고 새로운 자극에 더 취약해져. 이건 인간이 가진 본성이야.
물론, 일상의 권태를 잘 다루는 법을 알아야 성숙한 사람이겠지. 익숙함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감사할 줄 아는, 그래서 매번 새로운 자극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힘을 기르는 게 무척 중요한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사람을 보고 무언가를 느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본성일 거야. 다만 불쑥 튀어나오는 본성을 이성으로 잘 통제하느냐, 아니면 무력하게 휘둘리느냐가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을 구분짓는 요소겠지.
남편 또는 아내가 외도를 하는 것 역시 이러한 본성을 이성으로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정신적 바람과 육체적 바람 중에 더 용납할 수 없는 건 뭔가요?”
독서모임 이후에 내 주변 사람들한테도 물어봤는데, 다들 듣자마자 무슨 그런 생각을 하냐며 경악을 했지만 이내 각자 고민에 잠기고 갑론을박이 펼쳐졌어.
그러면서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했어 : “육체적 바람은 뭔지 알겠는데, 정신적 바람은 뭐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들 생각이 조금씩 다르더라. 내 생각을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깊은 관계’란 서로에게 집이 되어주는 관계라고 생각해.
왜 영화 <만약에 우리>에서도(😭) 문가영이 구교환한테 “나에게 집이 되어줘서 고마웠어”라고 하잖아? (스포 아님)

이것처럼 내가 온전히 의지할 수 있고, 더 편안하고, 가족처럼 챙겨주고/챙김 받고 싶은 관계가 정신적으로 깊은 관계라고 생각해. 상대방을 위해 희생할 수 있고, 각자의 감정을 서로 깊이 공유하는 그런 관계 말이야.
그러니까 정신적으로 바람을 피웠다는 건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서 그런 ‘집과 같음’을 느꼈다는 거지. 쓰기만 해도 빡치네.
내 생각은..
아마 눈치 챘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굳이굳이 더 용납할 수 없는 걸 고르라면 '정신적 바람'을 선택할 것 같아.
(..) 아니다 육체적 바람.
(....) 아니다 정신적 바람.
(......) 아니다 육체적 바람.
후.. 아니다 정신적 바람이 더 용납할 수 없어.
그 이유는, 나는 정신적인 관계가 육체적인 관계에 비해 훨씬 더 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누군가와 깊은 정신적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사람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하거든. 한두 번의 말초적인 자극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만약 내 애인/배우자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더 의지하고 싶어 하고 더 깊은 신뢰를 갖게 되었다면, 그 관계는 영영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해.
예를 들어 주변 친구들을 둘러봐도, 각 관계의 깊이는 다 다르잖아? 어느 정도 친한 친구로 지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정말 내 형제/자매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있지. 아주 드물겠지만 말이야. 그 정도의 관계는 결코 쉽게,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야.
하 근데 육체적 바람도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네. 더 쓰면 안 되겠다.
너 넌 어때? 둘 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더 용납할 수 없는 건 뭐야? 그 이유도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