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생각해 보면 무엇이든 마지막 순간은 있는데, 우린 그걸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아마도 그건 우리 삶이 많은 부분에서 예측 가능하지 않기 때문일 거야.
예를 들어볼게. 나는 대학교 1학년 입학 직전에 친구들과 터키 여행을 다녀왔어. 그때 정-말 너-무 말-도 안 되게 좋았어서 나중에 꼭꼭 다시 오겠다고 마음 먹었지.

근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내 삶은 자연스레 점점 바빠졌어. 그 이후에도 해외 여행은 종종 다녔지만, 아무래도 이미 가본 나라를 또 가기보다는 새로운 나라를 여행했지.
그러다 보니 10년이 넘게 흘렀어.
아마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는 학생 때가 가장 넉넉했을 텐데, 그럼 내가 앞으로 살면서 터키를 또 갈 수 있을까?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어. 시간이 나더라도 터키 말고 새로운 나라를 여행해보지 않을까? (가보지 않은 곳이 너무 많아!)
그렇다면 내가 2014년에 터키에서 봤던 그 화려한 성당들, 웅장한 대자연, 거리의 사람들, 특유의 냄새, 온도, 습도, 조명…들을 또 볼 수 있을까?
그때가 마지막이었다면 어쩌지? 만약 그게 내 평생의 마지막 터키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면, 조금 다른 마음가짐으로 여행하지 않았을까? 순간순간을 더 흠뻑 음미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작별 인사
‘아, 그때가 마지막이었구나’를 깨닫는 순간은 이렇게 뒤늦게 불쑥 찾아오곤 해.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볼게.
나는 13살 때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현지인 선생님들에게 수업을 받았어. 특히 내가 있던 기숙사는 학생이 1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규모의 기숙사였기 때문에, 선생님들과 학생들 사이가 유독 끈끈했어. 게다가 매일 만났으니, 그 선생님들은 나한테 필리핀 가족이나 다름 없었어.
1년의 어학연수 생활을 마치고, 정이 들대로 든 선생님들이랑 작별인사를 하며 내가 성인이 돼서 꼭 다시 보러 오겠다는 약속을 했어. 당연히 100% 진심이었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내 삶에 훨씬 더 중요한 문제들, 예를 들어 입시 같은 것들이 큰 자리를 차지하면서 그들은 내 기억에서 천천히 잊혀져 갔어. 그 가족같던 사람들이 말이야.
그리고 20대 초반의 어느 날, 난데없이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을 때는 이미 연락하기에는 늦은 상태였어. 얼굴과 이름은 또렷하게 기억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 페이스북을 온통 뒤져보다 결국 포기했어.
그러니까 2006년 7월에 했던 작별인사가 그들과의 마지막 대화이자 마지막 눈빛 교환이자 마지막 포옹이었고, 아마 매우 높은 확률로 앞으로 내 삶에서 다시는 그 선생님들을, 내 필리핀 가족을 볼 수 없을 거야.
그날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라는 걸 누군가가 슬쩍 말해줬다면.. 어땠을까?
Memento mori
고대 사람들은 “Memento mori”라는 말로 이걸 표현했어. 어디서 많이 들어봤지?
직역하면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이 말이 던지는 메시지는 두 가지야.
아는 척 조금만 더 해볼게.
16~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바니타스 정물화(Vanitas Allegory)’라는 화풍이 유행했다고 해. 이 화풍의 그림에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어. 뭐냐면,
그러니까 생명, 시간, 아름다움, 명예 같은 것들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늘 그 끝(죽음)을 기억하라는 거야. 세상 모든 것에는 끝이 있으니까.

마무리하자면, 나는 우리나라 말로는 마땅한 표현이 없는 “wishful thinking”을 많이 경계하려고 하는 편인데, 이게 오늘 레터의 내용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우리는 무엇이든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하고, 또 굳이 그런 생각까지는 하기 싫어하지. 불편하니까. 그런 생각은 애써 잠재우고, 희망적인 생각만 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있어야 그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해. 누군가와의 사소한 인사마저도.
너 넌 어때? 언젠간 잃을 수도 있는 것들을 충분히 만끽하면서, 또 현재에 충실하면서 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