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원하던 자유를 얻었는데 왠지 모르게 무력했던 경험 있어?
나는 대학생 때 휴학을 했을 때 그랬어. 군대 전역을 하고, 그 바로 다음 학기에 과감히 휴학을 때려버렸어. 이제 거대한 자유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지. 일종의 속박된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막 두근두근거렸어.
근데 사실.. 그때가 내 삶에서 가장 큰 무력함을 느낀 시기 중 하나였어.
아니 나한테 덜컥 큰 자유가 주어졌는데, 그걸 막상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나한테 뭘 하라고 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고, 반드시 해야 할 일도 없었고, 뭘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어. 그냥 큰 자유가 내 손 안에 주어졌고, 그걸 온전히 내가 스스로 알아서 써야 했던 거야.
그게 너무 버거웠어. 어떤 느낌인지 이해되려나?
그래서 허겁지겁 할 일을 찾았어. 알바도 해보고, 평소에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뒤늦게 여기저기 인턴도 지원해보고, 책도 많이 읽고,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그런데도 사실상 아무런 속박 없이 자유로운 그 하루하루가 왠지 모르게 무력하고 공허했어.
아마 비슷한 경험 있을걸?
내가 아주 좋아해서 가깝게 지내는 지인 중에, 고등학교에서 윤리 선생님으로 일하는 분이 있어. 편의상 싸배쌤이라고 부를게. (이사배 아님)
며칠 전에 싸배쌤을 만나서 비슷한 얘기를 나눴어. 지금 고3 담임을 맡고 계시는데, 얼마 전에 1년 전에 졸업한 제자들을 만났대. 근데 그 친구들이 이런 얘기를 했대:
입시에서 벗어나 엄청난 자유가 주어지면 이것저것 선택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갈 줄 알았는데, 막상 모든 것을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니 부담감에 다시 누군가의 지시를 따르던, 해야만 하는 일들이 주어지던 고등학교 시절이 그립더라!

자유로부터의 도피
내가 겪었던 고충, 그리고 싸배쌤의 제자들이 겪은 고충, 그리고 아마 너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고충은 에리히 프롬이라는 사람이 그의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설명했어.

(사실 너무너무x100 좋은 책이라 이 책으로만 레터를 10개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아무도 안 읽겠지?)
에리히 프롬은 '자유'라는 걸 두 가지로 구분했어. 하나는 소극적 자유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 자유야.
에리히 프롬은 사람들이 무언가로부터 해방되면 그 자유를 온전히 만끽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착각이라고 지적했어.
그게 아니라는 거지. 사실은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오히려 사람은 무력감과 고립감을 느낀대. 아마 이게 내가 느꼈던 무력함일 거야.
아는 척 쫌만 해볼게
먼 옛날 중세 봉건주의 시대 때는, 사회에서 내 자리가 정확히 지정되어 있었어. 예를 들어서 너는 농노, 너는 귀족, 이런 식으로 말이야. 사람은 신분을 갖고 태어났고, 그 신분에 맞게 살면 됐었어. 답답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안정감을 주기도 했을 거야.
그런데 자본주의 시대가 열리며 신분이나 종교 같은 게 약해졌지. 나를 속박하고 있던 공동체(유대)로부터 자유로워진 거야. 봉건시대에 태어났다면 고된 농사만 지으면서 지내야 했던 농노가, 이젠 부자가 되어 신분 상승을 하는 꿈을 꿀 수 있게 된 거야. 완전 좋지?
에리히 프롬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해. 왜냐면 사회에 정해진 내 자리가 없다는 건, 곧 그 사회에서 내 자리를 직접 찾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야. 내 자리를 쟁취해야 하는 거지.
조금 더 와닿을 수 있는 예를 들어보면, 고등학생 때는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서 착착착 공부만 하면 됐잖아? 그런데 대학교에 가고 나니 내 시간표는 내가 스스로 짜야 하는데, 어떻게 짜야 잘 짜는 건지 막막하잖아. 그냥 누가 정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막상 자유가 덜컥 주어진 개인은 무력함을 느껴. 에리히 프롬은, 이런 사람들이 무력함을 견디지 못해 결국 그냥 강력한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선택을 한다고 말해.

내가 여러 레터에서 언급한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와.
알랭 드 보통은 능력주의가 '너도 노력하면 할 수 있어!'라며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줬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쟁취해야 하는 이 사회에서 번듯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다 네 노력/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라는 열패감을 심어줬다고 해.
어때, 동의해?
그럼 자유는 나쁜 건가?
당연히 그건 아니지. 에리히 프롬은 우리가 소극적 자유를 넘어 적극적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적극적 자유라는 건 무엇으로부터 해방되는 형태의 자유가 아니라, 무언가를 향해 나아갈 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이야.
프롬은 '자발적 활동'을 통해서 적극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 자발적 활동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어.
첫번째는 생산적인 사랑이야. 꼭 연인 관계에서의 사랑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더 넓은 범위의 사랑을 말해. 그런데 중요한 건, 상대방을 내 행복을 위한 도구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각자 서로를 독립된 인간으로 존중해주는 형태의 사랑이야. 이를 통해 우리는 타인과 연결된다고 프롬은 말해.
두번째는 창조적 노동이야. 생계를 위해, 오직 돈을 벌기 위해 하는 노동도 물론 중요하지만, 에리히 프롬은 이게 자유를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어. 에리히 프롬이 말한 ‘창조적 노동’이란, 나 자신을 자발적으로 바깥 세상에 표현하는 형태의 노동을 말해.
예술가처럼 무언가를 창작하는 것, 나만의 앱을 만드는 것, 나를 표현하는 영상을 찍는 것, 나처럼 글을 쓰는 것 등이 있겠지?
물론 그 외에도, 기계의 한 부품으로서가 아니라 온전한 나를 표현하고 자발적으로 이어나가는 활동을 바로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창조적 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자발적 활동이라는 건 진정한 ‘나’라는 사람과 내 바깥 세계를 연결하고 통합시키는 활동이고, 이 과정에서 프롬은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어.
단순히 어딘가로부터 도망치는 자유는 우리를 오히려 무력함에 빠지게 하고, 그에 따른 여러 부작용을 낳게 된다고 해. 이건 나중에 다른 레터에서 소개해줄게.
어쨌든 다시 정리하면, 단순히 나를 구속하고 있는 곳에서 탈출하는 건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에리히 프롬은 말해.
그보다는 내가 어디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생산적 사랑), 나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며 살아갈 것인지(=창조적 노동)가 중요하지.
마무리
나는 이 책이 정-말 좋았어. 왜냐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유’라는 걸 무조건 좋은 거라고 생각하잖아? 나 역시 그랬고.
그런데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나의 그런 생각을 깨준, 다시 말해 내 시야를 확장해준 책이거든.
좋았던 내용의 10%도 다루지 못해서 아쉽지만, 더 길어지면 도망갈 것 같으니 마지막으로 책에서 가장 좋았던 문장 중 하나로 마무리할게.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자기 자신이 아닌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없고,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만큼 큰 자부심과 행복을 주는 것도 없다."
너는 어때? 에리히 프롬이 말한 자유를 경험해본 적이 있어?
무언가로부터 해방되었지만 막상 그러고 나니 무력했던 경험(=소극적 자유), 또는 나다움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거나 나 자신을 표현한 경험(=적극적 자유)이 있어?